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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의 문화재, 이천 향교-이천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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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4.1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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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관광 #이천향교 

 

지정번호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2호 규모(수량) : 명륜당37.65㎡, 대성전 58.87㎡ 동서무각12.83㎡ 시대 : 조선태종 2년(서기1402년) 지정일 : 1983. 9. 19. 이천시 창전동 336번지 망현산(望峴山)(아리산, 鄕校山, 또는 위후산-衛後山) 밑에 자리 잡은 이천향교는 조선개국 11년 태종2년(1402)에 당시의 감무(監務) 변인달(邊仁達) 신축했다. 이천시 중심가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우거진 녹음 속에 둘러싸여 심산유곡과 같은 풍치로 주민들을 위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향교와 비슷한 제도는 고려시대에도 있었지만 조선 건국과 함께 유학을 바탕으로 하는 교학 쇄신정책(敎學刷新政策)을 펴 전국적으로 크게 확산 되었는데, 이천이 도호부로 승격된 세종 26년(1444) 이후에 이천향교는 관헌(官憲)이 교수(敎授) 1인을 두었고 교생(敎生) 정원은 90명이었다. 양촌(陽村) 권근(權近)이 지은 이천신치향교기(利川新置鄕校記)에 의하면 신사년(1401) 봄 감무로 부임해 온 변인달이 지금의 안흥동에 있던 안흥정사(安興精舍)에서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고, 절을 학교로 만들 수 없다고 하여 자신이 직접 향교를 세울 자리를 물색하던 중 지금의 위치에 터를 잡으니,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지점으로 여러 산으로 들러 싸여 형세가 그림과 같았다고 한다. 공무(公務)의 여가에 백성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감독하니, 임오년 7월에 시작하여 8월 상정(上丁)에 석전(釋奠)의 예를 봉행(奉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수백년을 내려오는 동안 수차례의 중건을 거친 기록이 남아 있고, 문헌에 의하면 옛날의 규모는 지금보다 컸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규모는 대성전이 겹처마 맞배집 형태로 58.87㎡이며, 동무와 서무가 각각 12.83㎡로, 이들을 둘러싼 담장과 문으로 되어 있으며, 문 왼편 밑으로 홑처마 맞배집 형태의 명륜당은 37.65㎡의 규모이다. 1945년 5월에 조직된 이천시 유도회에서 지금까지 관리해 오고 있는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는 이천 지역의 유림들이 이곳에 모여 석전제(釋奠祭)를 연다. [영상 이천시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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