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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고 건강한 직장을 만들어야 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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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7.03.2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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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8145339_3778.jpg▲ 정 혜 선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가톨릭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현황을 살펴보면, 연간 88,279명이 부상이나 질병을 입었고 995명이 사망했다. 총 90,129명의 산업재해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현황은 5분에 1명씩 다치고, 5시간마다 1명씩 사망하는 수준이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현황을 OECD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근로자 10만 명 당 영국은 0.5명, 일본 1.7명, 미국 3.3명, 칠레 5.1명, 그리고 멕시코가 7.9명인데, 우리나라는 9.0명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1위로 산재 왕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산재 왕국 대한민국의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 규모

이와 같이 높은 산업재해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 추정 금액은 20조4천억 원에 이른다. 그리고 산업재해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노사분규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보다 무려 106배나 높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산업재해자 중에서 업무상 질병이 차지하는 비중의 심각성이다. 전체 산업재해자 중 업무상 질병자의 비율은 8.8%이지만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중 업무상 질병자의 비율은 46.2%를 차지할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업무상 사고로 사망하는 근로자는 사고성 재해자 100명 중 1명인데 비해, 업무상 질병으로 사망하는 근로자는 업무상 질병자 10명 중 1명꼴이다. 이는 업무상 질병자의 발생 수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보여준다.

 
최근에 발생하는 업무상 질병자의 현황을 살펴보면, 정신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2010년보다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1) 이는 직장에서 발생하는 직무 스트레스, 우울증, 공황장애 등이 사망으로까지 이어지는 문제를 잘 보여준다.

얼마 전에 발생했던 고등학교 실습생 콜센터 자살 사건은 우리나라 직장의 현실이 얼마나 힘겹고 견디기 어려운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작년에도 구의역에서 컵라면 하나를 남기고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19살 비정규직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서 우리나라 노동 현실이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임을 실감하게 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심각한 건강 문제가 발생하는 사업장의 안전보건 체계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노동자 건강을 지키는 산업보건 분야에 규제완화라니?

우리나라는 50인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장에 보건관리자를 두어 근로자의 건강을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50~300인 규모 사업장의 사업주 비용 부담을 고려해서 외부 기관에 보건관리를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한 달에 1~2회의 방문으로 보건관리를 수행하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자 수가 300인 이상인 사업장에는 전담 보건관리자를 두고 근로자에 대한 응급처치와 작업환경관리 등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1997년에 시행된 ‘기업 활동 규제 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해 사업장에 보건관리자를 전담자로 두지 않고, 사업장의 규모에 관계없이 외부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완화’ 조치가 시행되었다.

이로 인해 기업에서 보건관리자를 자체 선임하지 않고 외부 기관에 위탁을 맡기는 경우가 76.2%나 되고 있어서 사업장에서는 산업재해자가 발생해도 신속하게 응급처치를 수행할 수가 없고, 지속적인 관리를 수행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기업 활동 규제 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시행된 초기에는 이법에 의해 75개 조항이 규제완화가 되었는데, 그 중 32개 조항이 삭제되고, 다수의 조항에서 전문이 개정되어 규제완화가 복원되었지만 근로자의 안전 및 생명과 관련된 산업보건 분야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화된 규제가 계속 남아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소규모 사업장의 산업재해 관리가 중요한 이유

뿐만 아니라 보건관리자를 두어야 하는 사업장은 제조업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일부 서비스업이 해당되기 때문에 심각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콜센터와 같은 ‘사업 지원 서비스업’은 아예 보건관리자 선임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콜센터에서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자가 발생해도 이를 관리할 전문 인력이 없고, 대부분 젊은 여성들인 전화상담사들이 고객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담배를 피우면서 해결해도 이를 개선하기 위한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운영할 전문가가 없는 상황이다.

직장에 다니는 모든 근로자들은 스트레스, 과로사, 장시간 근로, 야간 교대근무 등에 시달리고 있고, 컴퓨터 사용으로 인한 근골격계질환 등 각종 건강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할 보건전문가가 사업장에 배치되지 못해 근로자의 건강문제가 갈수록 누적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이다.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은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의 98.8%를 차지하고 있고, 소규모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도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65%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소규모 사업장은 보건관리자 선임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어 있고, 대부분의 사업주 의무사항에서도 제외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이들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는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에서 발생한 재해의 81.6%를2) 차지하고 있다. 결국 소규모 사업장의 산업재해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국가와 기업이 산업안전보건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

적극적 산업안전과 보건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은 근로자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도 매우 필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연령은 2014년 기준으로 44.2세를 넘어섰고, 전체 취업자들 중에서 40세 이하는 37%에 불과하고, 40세 이상의 취업자 비율은 63%로 증가했다. 40세 이상의 중고령 근로자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는 우리나라 전체 산업재해의 76.8%를 차지하고 있다.3)

이처럼 고령화되고 있는 근로자들의 노동력을 확보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인 근로자 건강관리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300인 이상의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보건관리자를 채용해서 근로자 건강관리를 수행함으로써 건강한 노동력을 확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의 각종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으므로 국가가 이를 담당해서 해결해야 한다.

전체적인 의료비 증가를 막기 위해서도 국가가 이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나라 인구 중 37%
가4) 직장을 다니는 근로자다. 이들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데, 대다수 만성질환들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상시적 관리를 받게 되면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될 것이다. 중장년층의 근로자를 관리하지 않으면 조만간 전체 인구의 25%로 증가할 노인들의 엄청난 의료비 부담을 막을 수가 없다. 따라서 산업보건의 역할도 소극적인 산업재해의 방지 및 예방과 직업병 및 작업 관련성 질환의 관리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사업장 근로자 대상 건강증진사업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복지국가의 건강한 근로자와 안전한 직장을 기대하며

특히 우리나라는 2차 산업인 제조업보다 3차 산업인 서비스업 종사자가 훨씬 더 많고, 고용형태도 전체 근로자의 반이 비정규직이며, 제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근무형태도 다양해지고 산업보건 관련 문제도 변화하고 있는데, 여전히 근로자의 건강은 개인의 책임으로 맡겨져 있어 산업적 수요 변화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단순히 이전의 규제를 다시 강화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산업보건 문제를 적극적인 기업 활동 지원 정책의 하나로 추진해야 한다. 의무고용 완화, 안전관리자 겸직 허용, 안전관리 외부 위탁 등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기업 지원 활동의 한 축으로 산업보건을 추진해야 한다.

적어도 300만개의 중소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전국에 약 6,000명 정도의 산업간호사를 배치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이 사업체를 담당해서 근로자 건강관리 지원 활동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기업의 부담도 덜어주고 근로자의 건강도 보장해 줄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다. 근로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산업보건 전문 인력이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직접적으로 돌볼 수 있다면 산업재해도 예방하고, 고령화 시대의 건강한 노동력도 확보할 수 있어 산업 활동을 촉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장차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서는 건강한 근로자와 안전한 직장에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이를 통해 기업 활동도 촉진할 수 있길 희망한다. 그래야 선진 복지국가에서 보는 것처럼 노동자의 건강권뿐만 아니라 노동권이 전반적으로 신장되고, 그 속에서 국민의 행복 수준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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