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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파면 이후가 더 중요한 이유

촛불 혁명의 완성을 복지국가 건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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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7.03.1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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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8 : 0으로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인용 판결로 전 국민이 가슴 졸이며 지내왔던 지난 90여 일의 투쟁은 이제 마무리됐다. 이 판결은 지금까지 광화문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의 열망과 TV를 통해 지켜보던 국민들의 마음을 반영한 위대한 승리였다.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자리를 잡은 이래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최고 지도자를 축출한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명예혁명이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의 역사적 의의

마음껏 즐거워하고, 서로에게 축하해 주자. 아무리 어려운 집이라도 이날은 치킨과 맥주를 주문하고, 고단한 일상에 지친 보통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맥주 한 잔의 여유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이제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아주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되었고, 올망졸망 크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앞으로 자랑스럽게 이 날의 그 자리에 우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87년 6월 항쟁이 미완의 혁명으로 끝난 후 30년이 지나서 이제 대한민국의 역사가 새롭게 한 단계를 마무리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변화를 향한 기대와 열망을 담아 광화문 광장의 촛불로 모였고, 폭력이 아닌 평화적이고 자발적인 의사 표시를 통해 정치권에 적폐의 청산과 거대한 변화를 요구했다. 이에 국회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탄핵을 결의했고, 헌법재판소가 주어진 법적 권한에 따라 공정한 판결로 이를 수용한 것이다.

박근혜 파면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만든 민주주의의 법적 체계가 제대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우리 국민들은 피를 흘리는 무력에 의한 혁명이 아니고 합법적 절차에 의한 혁명을 위해 주말을 반납하고 20여 차례에 이르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고, 탄핵 반대 세력의 어이없는 작태까지도 참으면서 감수했던 것이다. 그런 인고의 시간이 있었기에 정당한 절차에 따라 현직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될 수 있었던 것이다.

탄핵을 반대하던 국민들도 이제는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헌재 판결 이후에도 반발한다면 더 이상은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불만을 가진 일부 세력이 있을 것이나 국민들 간의 갈등과 분열은 이번 헌재 판결로 결국에는 정리될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잘못과 왜곡을 고치고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예정된 정치 일정, 그리고 새 정부가 당면할 상황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진 이후에도 사실은 달라질 것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이 결코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대부분의 국민들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탄핵 심판이 진행되던 중에도 국정교과서 강행, 사드 배치 강행, 각종 친 재벌 규제 완화 법률 추진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 ‘박근혜로 인한 적폐’ 문제는 박근혜와 그 일파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횡과 국정농단은 재벌–보수언론–학계–법조계-고위관료-군부 등의 기득권 집단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었던 게 분명해졌다. 따라서 이번 헌재의 파면 결정은 박근혜 개인과 그 일파의 축출일 뿐이며, ‘철의 삼각’을 이루고 있는 이들 기득권 집단들은 여전히 건재한 상태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지켜오던 기득권을 쉽게 내주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의 파면은 이들 기득권 집단의 입장에서 보면 사태의 악화를 막아 몸통까지 피해가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꼬리 자르기”로도 볼 수 있다. 이는 너무도 명백한 비리와 국민의 압도적인 탄핵 지지를 무시하거나 저지하기에 역부족인 상황도 있었겠지만, 생존에 위협을 느낀 보수 언론과 재벌 등의 기득권 세력이 암묵적으로 동조해주었기에 가능했던 측면도 있다. 실제로 이들 ‘내부자들’은 여전히 경제력이나 물리력, 그리고 공권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 기득권을 대상으로 하는 전면적인 개혁은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다.

4월 초까지 각 정당들의 경선이 이어질 것이고 5월 초순에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5년 단임제인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는 중요한 국정 방향에 대한 “국민투표”의 성격을 가진다. 각 후보들은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발표하고 이를 구체화한 공약을 내걸고 TV토론 등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검증받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최종적으로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살고자 하는 나라의 모습을 결정하고 이를 이루어줄 권력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통상 1년의 기간 동안 이루어지던 일들이 이번에는 2개월 만에 이루어진다. 검증의 기간으로는 너무나 짧다.

차기 정부는 인수위원회 과정도 없이 선거 다음 날 바로 출범한다. 총리 청문회 절차가 마무리되고 국회의 동의를 얻으면 신임 총리의 추천과 대통령의 지명으로 각 부처 장관들의 인사청문회가 진행된다. 이후 비로소 신임 장관들이 정식으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게 되는데, 문제는 이 과정이 빨라도 2개월 이상 소요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새 정부의 국정 철학과 정책 방향을 반영해서 실무의 집행을 담당해야 할 주요 공공기관 수장들의 상당수는 박근혜 정부에서 임용한 사람들일 것이다. 임기가 남은 기관장들이 곱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권여당 없이 5당 체제로 바뀐 국회는 이미 탄핵 심판 기간 동안 “특검 연장 실패, 황교안 총리 견제 실패, 사드 배치 저지 실패, 상법 개정안 통과 실패, 국정 교과서 추진 중지 실패” 등 일련의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반개혁적인 정치적 입장과 정치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새 정부가 출범해도 국회의 의석 분포를 볼 때 상황이 달라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몇몇 정당들이 연정을 해서 과반을 만들더라도 국회선진화법이 계속 새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복지국가가 돼야 내 삶이 실제로 바뀔 것

새 정부가 사드(THAAD) 배치로 악화된 한-중 관계를 개선하고 중국과 경제 교류를 정상화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촛불 혁명을 주도한 국민들은 개성공단의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를 원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와 절차들이 너무도 많다.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축소, 그리고 산별노조 확대와 산별 단체협상의 적용 확대 등 노동 개혁을 위해서는 최저임금위원회를 국회로 가져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노동자 대표의 경영 참여 보장 등 적극적인 노동 개혁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사용자측은 비정규직의 저임금 노동에 너무 익숙하고, 대기업 노조는 자신의 기득권을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노조의 조직율도 너무 낮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중소기업과 상생할 수 있도록 원-하청 거래를 정상화하고, 기업 생태계를 복원하며 공정거래가 정착되도록 경제민주화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촛불 혁명의 열기를 모아내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의 재벌 개혁 방향은 아직 구체화되어 있지 않고 같은 당 내에서도 의원들에 따라 입장이 중구난방이다. 한진중공업 파산으로 촉발된 해운산업의 위기와 거제와 울산 지역의 조선 산업 붕괴는 단순히 지역의 경기 침체를 넘어 자동차와 반도체, 화학 등 5대 주력 산업의 전반적 위기로 확산될 것이며,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영세 자영업과 중소기업들은 줄도산과 파산이 예정되고 있다.

이번 국정 농단의 핵심적인 사안이었기에 어느 분야보다도 국민들의 기대가 큰 검찰과 국정원 등 사정기관과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은 ‘고비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나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경찰의 기소권 부여, 검사장 직선제 등 실제로 들어가 보면 여전히 백가쟁명의 상태이고, 국정원의 경우 국내 파트 해체 외에는 별다른 개혁 방안도 없는 상태이다. 특히 개혁 대상 기관들의 입김과 권력이 여전한 상태에서 실제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개혁 자체가 차기 정부에서 시행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대안 언론은 아직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겪었던 언론 상황은 최근 10년간 오히려 더 악화된 상태이다. 보수 언론들은 차기 정부의 개혁을 사사건건 반대할 것이다. 박근혜의 적폐와 비리에 일조한 공중파들은 사장의 교체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편집권의 독립이나 해직 기자의 복직 등을 저지하기 위해 새 정부 흔들기를 지속할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자신의 권력을 재생산하는 데만 관심이 있고 실제로 국민들이 당면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무관심하고 무능하다.

문제는 이런 20대 국회가 앞으로 3년간이나 지속되기 때문에 새 대통령이 아무리 유능해도 국회의 동의와 협력을 얻기가 쉽지 않고 노동관계법이나 상법의 개정, 적극적 증세 등의 획기적인 개혁이 통과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금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나선 분들이 일정 수준의 복지 확대나 노동 개혁, 그리고 재벌 개혁과 적폐 청산은 이야기하지만 대한민국의 혁신적 비전이나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나라의 구체적인 모습을 일관되게 제시하는 분이 아직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복지국가 건설로 촛불 혁명 완성해야

한겨울 내내 광화문 광장을 메웠던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박근혜 퇴진과 적폐 청산을 계기로 “살만한 나라,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것이다. 아이들이 더 이상 세월호 참사와 같은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서 대학입시로 이어지는 살벌한 경쟁이 아니라 전인적 교육 속에서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보다 잘 개발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과도한 등록금 부담 때문에 밤새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도록 창의적인 교육 환경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촛불 집회에 참석한 것이다.

젊은이들은 청년 실업의 공포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보수를 받으며 취업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집이나 소득을 따지지 않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인들의 손을 잡고 광화문으로 나왔던 것이다. 매일 매일 어렵게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가장과 주부들은 의료비 걱정, 노후 걱정, 집값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촛불을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국민들이 꿈꾸는 나라가 바로 “복지국가 대한민국”이다. 실체 없이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라 이미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들에서 구현되고 있는 모델이기에 우리가 따라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비례대표의 확대와 다당제의 합의제 정치 체제를 통해 다양한 국민들의 요구가 생산적으로 정치과정에 수렴되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상호 역할 분담을 하고, 노동권 보장을 통해 산업 구조의 개편과 고부가 가치 산업이 육성되는 나라,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경제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나라가 바로 복지국가이다.

공공부분에서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통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가고, 보육, 교육, 주거, 의료, 노후 등의 국민 불안을 없애고 삶의 부담을 덜어주는 나라가 복지국가이다. 누구라도 능력에 따라 세금을 내는 대신, 사회경제적 권리와 안정적 삶이 모두에게 보장되는 나라가 복지국가이다. 대통령 탄핵과 파면 이후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실제 체감할 수 있는 변화”까지 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그러나 촛불의 열기를 복지국가 건설로 이어가야 한다는 국민적 기대와 열망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박근혜 파면이라는 하나의 승리를 계기로 새로운 나라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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