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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찬의 비오람 암 요양병원, ‘1년간의 항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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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5.1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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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한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지난해 4월 어느 날, 삼성병원 산부인과병동 3인실에서였다.
“난소암3기입니다!”

서울 삼성병원 이00교수가 사복을 한 수간호사와 젊은 의사 둘을 대동하고 내 침상으로 와서 통보했다.
순간 나는 머릿속 피가 모두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생각도 모두 빠져나갔는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지러웠다.
백지장처럼 빈 머릿속!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은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
그저 의사에게 어떤 자비의 한마디라도 구걸하는 듯이~~
교수만 쳐다본다.
어떤 희망적인 말이 없을까? 하는 얼굴로~~
 
그러나 담당교수는 굳은 얼굴로 일행을 몰고 타 병실을 향해 사라졌다.
“양성종양입니다. 아니면 1기입니다. 라는 말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제서야 나는, 남편을 향해 쓰러지며 작은 소리로 울부짖었다.
아니 울 기력조차 없었다.

“나 3기래! 이제 가족들하고 밥한 번도 먹을 수 없는 거지!”
남편은 빈위로의 말 한마디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간호사, 의사들을 붙잡고 “3기면 수술 받으면 살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건성으로라도 살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당시 심한 불면증과 우울증, 변비, 발가락 물집으로 걷지 도 못하던 상태였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당시 남편은 마음속으로 그랬다고 한다.
“한 가지도 감당 못하는데 가지가지 한다.

그 어렵다는 난소암3기에, 잠 못 자는 불면증, 우울증, 티눈으로 인한 보행불가…….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과 수면은 치료에서 가장 중요하다는데~~~
말기암에, 수면장애, 운동불능, 변비까지 내가 생각해도 가지가지 하는 것 같았다.
 
현대건설, 중동사막에 나가면서 악바리 근성을 체득한 남편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현대근성을 발휘하였다.
남편은 나를 데리고 강원도로 가서 이상구박사를 만났다.

오색약수터 인근에 가니 이상구박사가 운영하는 자연치유캠프가 있었다.
미국의사자격을 뒤로하고 ‘엔돌핀박사’로 이름을 날린 그분은 “뉴스타트 운동”이라는 자연치유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입소하여 자연음식과 운동, 명상 등 자연치유를 권했다.
 
좋은 치료법이라고 생각했지만
불안한 우리에게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편은 “수술을 최대한 빨리하고, 좋은 요양병원에 가서 뉴스타트에서 지도하는 자연치유요법들을 시행하자”고 방향을 잡아주었다.
삼성병원에서 5~시간의 수술 후 7일후에 퇴원하라고 했다.
남편은 요양병원들에 대하여 많은 조사를 했다.
 
첫째; 본 병원과의 거리,
둘째; 위급시 대비하여 인근에 병원이 가까운지,
셋째; 숲속에 위치했는지, 쾌적한 산책로가 인접해 있는지,
넷째; 병원건물, 입원실, 각종 시설이 깨끗하고 쾌적한지,
다섯째; 의료시설과 의료진이 뛰어난지,
여섯째; 가족들이 찾아오기 편한 교통여건인지,
일곱째; 식사의 질이 좋은지

이상 7가지 여건에 대하여,

남편이 여러 곳을 다녀 식사까지 해본 후에,
위 조건에 가장 접근한 병원이라며 나를 안내하였다.
 
남양주시 진접읍내 차로 5분 이내 거리,
지난해 오픈한 병원이라 호텔처럼 넓고 쾌적했다.
5분이내 도심지 병원들, 이마트, 홈플러스 등이 위치하고,
숲속 산책로가 인접했을까하고 우려했지만,
최고의 산책로가 병원후문에 닿아 길게 이어져 산책하기에 너무 좋았다.
이 병원의 백미는 방안 대형유리창으로 보이는 숲속전경과 시내전경이었다. 멀리는 우리나라 최고높이의 잠실롯데타워까지 보였다.
 
대형 통유리 창에 담긴 푸른 숲,
소나무 가득한 숲을 방에서 바라보며
늘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나에게는,
너무도 고마운 조건을 지닌 병원이었다.
 
지난주엔 매 10분마다 다니는 2층 좌석버스를 타고 잠실까지 (50여분, 잠시 자고나니 도착) 혼자서 삼성병원을 다녀오기도 했다.
아이들도 면회 오기가 너무 편하다며 서울에서 좌석버스로 자주 다니러 와서 집에 대한 향수도 전혀 없다.
 
서울대, 삼성병원출신의 최고 엘리트 병원장은 매일 방문시
키를 낮추며, 누워있는 환자들에게 눈높이까지 맞추어 증세를 묻는다.
우리 환자들의 증세에 하나하나 답하며, 메모했다가 환자들의 니즈(needs)를 해결해준다.
마치 그가 삼성병원에서 했던 것처럼…….
그는 비오람 병원에, 우리 환자들이 친절간호사를 평가하는 제도와 환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바로 해결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환자들을 향한 그의 환한 미소와 배려심 가득한 리액션들을 보며
환자들을 가족같이 돌보려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어 행복했다.
그래서인지 환우들 사이에서, “요양병원 중 의사와 간호사가 비오암병원이 제일 친절하다! “라고 말하는 소리를 자주 듣곤 한다.
 
환자들도 모두 가족처럼 서로를 챙겨주는 분위기여서,
나는 마음 편히 면역관리에 전념할 수 있었다.
밤10시에 취침, 새벽6시 기상, 기상하자마자 체온측정을 해보면 36.5~37도가 나왔다. 낮에는 37도 유지, 24시간 차는 뜨끈한 복대와 강황 덕분인 듯하다. 양치 후 따뜻한 물3~4잔과 배 마사지....
 
하루 한번 산책로를 다녀오면 1만보를 채운 후, 독일제 최신모델의 고주파치료기 치료를 받은 후‘ 원적외선 치료기를 이용하고 편백나무,자죽염찜질방에서 찜질. =이외에도 병원에는 많은 건강증진 시설들이 있다. 환우들과 함께 해먹는 과일해독주스도 큰 도움이 되었다. 2층 헬스장, 물리치료실, 한방치료실, 그 외에 수요일에는 수요예배, 노래방, 탁구장, 미팅 룸, 세탁실
 
독일제 고주파치료기(지난해 도입최신기종), 전신용 원적외선 치료기, 한방 치종단 항암제...,등 양,한방치료…….
 
입소할 때는 두려웠지만 “따뜻하고 가족 같은 병원분위기 덕분에 집 생각이 거의 나지 않았다“고 하면 면회 온 지인들은 믿지 않는 눈치다.
 
어느덧, 1년이 흘러, 지난 주 3차 피검사와 CT결과가 나왔다.
이번에는 병실이 아닌, 2번방 앞에서 대기하다가 들어갔다.
“000씨 CT결과가 아주 좋습니다. 피검사도 좋고요! “말하는 교수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상큼했다.
 
1년 전, 무서운 저승사지처럼 굳어있던 교수님의 얼굴,
1년 후 지금은 마치 천사의 얼굴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분도 사람인지라, ‘나쁜 결과를 통보할 때는 마음이 무거워서 굳어있었고,
좋은 소식을 전할 때는 기분이 좋아 미소를 머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교수님께 90도 배꼽인사를 하고
소풍가는 어린이마냥 들뜬 마음으로 진료실을 나왔다.
 
나는 1년간 좋은 길로 안내해준 하나님과, 그동안 한 병실에서 의학, 면역 공부를 하며 간호해준 남편에게 감사했다.
 
1년 전 지옥처럼 무서웠던 삼성병원, 그 병원이 이제는 친근하게 인사하는 듯 했다.
병원 하나하나 나오는 길이 새롭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는 오늘도 스위트룸같이, 아름다운 비오암병원에서 숲속 창밖을 보며 이 글을 쓴다.
 
오늘도 나의 작은 증상에도 명쾌히 답을 주고, 진료해주시는 미소와 예의로 무장하신 원장님과 친절간호사님들께,
가족 같은 환우님들께
오늘의 회복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며 모든 환우들의 쾌유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고통의 길을 걷는 환우들에게 전하고 싶다.
“절대 암 앞에 포기하지마라!
한걸음, 한걸음, 담담히 걸어 나가면,
1년 후 감쪽같이 사라질 테니
절대 절망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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